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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읽는다. 동네를 직접 걸으며 사람들이 얼마나 머무는지, 무엇을 들고 다니는지를 관찰해 브랜드와 맞는 입지인지 판단한다.
같은 브랜드라도 상권별로 메뉴를 다르게 짠다. 을지로에는 게 쌀국수 같은 실험적 메뉴를, 백화점 몰에는 직관적인 메뉴를 배치한다. 공간에서 고객이 기대하는 경험에 메뉴를 맞춘다.
첫인상을 위해 공간에 직접 관여한다. 소품·조명·원단을 현지에서 조달하고 직접 제작해, 문을 여는 순간 브랜드 세계관이 느껴지도록 만든다.
을지로 골목, 2층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펼쳐지는 70년대 사이공의 풍경. 을지깐깐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베트남 정통 쌀국수로 외식업계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킨 브랜드다.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조경찬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부터 브랜드 철학까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외식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베트남에서 5년 정도 살았어요. 처음엔 농업 관련 일로 갔다가 그냥 너무 좋아서 눌러앉았죠. 그러다 현지에서 쌀국수를 먹는데, 한국에서 먹던 쌀국수랑 맛이 전혀 다른 거예요. 진짜 현지 맛이랄까요. 그걸 한국에 들여오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이 스타일(게 쌀국수)의 쌀국수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게 저예요.
'본점 한정'이라는 치명적인 매력. 평일 점심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게쌀국수 한 그릇을 위해 을지로 골목을 찾아온다.
Q. 오픈 초기에는 어떠셨어요?
2019년 11월에 오픈했는데, 딱 코로나가 터졌어요. 하루 매출이 8만 원이었던 날도 있었어요. 점심, 저녁 다 합쳐서요. 정말 막막했는데, 다행히 이듬해 3월에 모닝와이드에서 촬영 제안이 왔어요.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방송이 나가고 나서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코로나 중에도 매출이 확 올랐고, 그 후에 생생정보통에서도 연락이 와서 또 한 번 알려졌죠. 그때부터 유튜버들도 찾아오고 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았어요.
위기의 타이밍을 실력의 타이밍으로. 매체와 손님들이 먼저 알아본 덕분에 걱정할 틈도 없이 바빠졌던 조경찬 대표.
Q.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방송 직후에는 확실히 손님이 많이 늘었어요. 근데 시즌 1만큼 파급력이 오래가진 않더라고요. 생각보다 빨리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재미있는 건, 오래 다니던 단골분들이 “왜 자꾸 유명해지냐”고 서운해하시는 거예요. (웃음) 그리고 이제 길 가다가 알아보시는 분들도 생겼어요. 얼마 전엔 친구(신부) 결혼식장에서 신랑측 지인들도 알아보더라고요. 방송의 영향도 있겠지만, 유튜브 쇼츠 같은 데 계속 노출되는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을지로에서 홍콩 찾기. '여의주훠궈관'은 문 여는 순간 여권 검사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Q. 매장마다 메뉴 구성이 다르다고 들었어요.
네, 상권마다 고객 성향이 달라서요. 을지로는 개성 강하고 실험적인 메뉴에 반응이 좋아요. 게 쌀국수도 을지로에만 있구요. 반면 백화점 같은 몰은 직관적이고 선택지가 다양한 게 맞더라고요. 해산물 쌀국수, 매운 쌀국수처럼 알아보기 쉬운 메뉴들이요. 브랜드 DNA는 유지하되, 그 공간에서 고객이 기대하는 경험에 맞춰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Q. 트렌드 변화에는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으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베트남에 가요. 현지 맛도 보고, 트렌드도 살피고, 소품도 사오고요. 예를 들어 올해는 작년보다 덜 자극적인 맛을 찾는 손님이 늘었어요. 그래서 조금씩 간을 조정하고 있어요. 안성재 셰프 심사평에서 “산미가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산미도 미세하게 추가했고요. 음식뿐 아니라 공간 소품도 계속 조금씩 바꿔줘요.
Q. 새 매장을 낼 때 상권을 어떻게 분석하세요?
숫자보다 사람을 봐요. 직접 그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데요. 여유 있게 머무는지, 사진을 찍는지, 뭘 들고 다니는지, 포장 음식을 들고 가는지 책을 들고 가는지. 외식업은 결국 사람이 그 공간에 얼마나 머무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보면 이 브랜드 결이 맞는 곳인지 감이 와요.
포차와 레트로한 감성을 건물 안으로. '주마등'이 해석한 가장 쾌적한 방식의 인테리어는 눈을 즐겁게 한다.
Q. 공간 디자인에도 직접 많이 관여하시는 편인가요?
을지깐깐 1호점은 소품을 거의 다 베트남에서 직접 사 왔어요. 조명 틀도 제가 직접 제작했고요. 원단을 가져와서 만들기도 했어요. 꾸미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잖아요. 매장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문을 열었을 때 딱 그 세계관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대동옥' 입구에서 반겨주는 거북이 두 마리, 몸값만 수백만 원. 소품 하나에도 진심을 다하는 대표님의 '거북이 플렉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한 매장에서 직원 실수로 불이 난 적이 있어요. 1억 가까이 날렸죠. 6개월 정도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주마등처럼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가면서, 역설적으로 이 공간을 찾아오는 분들이 부자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매장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 부자 되세요”라고 써 붙이게 됐어요.
훠궈 먹으러 왔다가 부자 기운까지 덤으로. '주마등' 실내에도 '여의주훠궈관'에도 모두 부자가 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Q. 앞으로의 목표는요?
내년까지 회사 매출 500억이 목표예요. 그리고 브랜드마다 레시피 매뉴얼, 동선, 식자재 관리 같은 운영 시스템을 좀 더 공통화해서 어느 매장에서든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해외 진출에 대한 꿈도 있고요. 닭 요리나 해산물 콘셉트의 새로운 브랜드도 구상 중이에요. 닭은 종교, 문화를 떠나 전 세계 누구나 먹을 수 있잖아요. 그게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
을지깐깐은 단순히 “베트남 음식을 파는 식당”이 아니다. 대표가 5년간 현지에서 몸으로 익힌 감각, 불이 나도 다시 일어서며 쌓아온 내공, 그리고 “오신 모든 분이 부자 됐으면”이라는 진심이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코로나 속 하루 8만 원 매출에서 시작해 여러 지점과 500억 매출을 꿈꾸는 지금까지, 그 성장의 중심엔 화려한 마케팅 전략보다 사람을 관찰하고, 맛을 미세하게 조율하고, 공간의 첫인상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트렌드가 숨가쁘게 바뀌는 서울 외식 시장에서 을지깐깐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 같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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