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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Highlights
글로벌 주류 소비 감소: 2030 세대의 절주와 회식 감소로 서울·런던·도쿄 전반에서 대형 유흥 상권이 구조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상업용 리테일 공식 전환: 대형 평수와 빠른 회전율 중심의 상권 모델이 소형 면적과 체류 시간 중심의 고감도 바로 전환되었다.
골목 상권 테넌트 재편: 호프집이 빠진 자리를 가챠숍, 카페, 하이브리드 공간이 채우며 유흥가가 비음주 기반 취향가로 재편되고 있다.
술이 안 팔린다 : 27년 만의 최저
지난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98만 8천㎘로, 외환위기였던 1998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300만㎘ 선이 무너졌다. 정점이었던 2015년(380만 4천㎘)과 비교하면 10년 새 21.5%가 증발했다. 맥주는 전년 대비 7.2% 줄며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고 소주와 막걸리 역시 수년째 내리막이다. 대중 주류 3종이 동시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일시적 경기 사이클이 아닌 명백한 구조적 침체를 뜻한다.

마시는 방식도 달라졌다. 2010년대 중후반 월 9일대 중반, 1회 7잔대였던 음주 지표는 최근 조사에서 월평균 8.8일, 회당 6.6잔으로 떨어지며 빈도와 음주량 모두 하향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다음 세대가 있다. 20대 남성의 고위험음주율은 10년 새 17.8%에서 10.4%로 급감했고, 최근에는 9.7%까지 내려앉았다. 지금의 20대는 애초에 폭음을 학습하지 않은 세대다. 신입생 환영회와 2·3차 회식으로 대물림되던 음주 문화는 팬데믹 시기 대학 생활을 비대면으로 시작한 이들의 성인 진입과 함께 전수 고리가 끊어졌다.
그 사이 건강과 자기관리가 세대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20대의 하루 평균 주류 섭취량은 이미 60대보다도 약 3% 낮다. 편의점 매대에서도 수십 년간 부동의 1위였던 가공유와 캔맥주의 자리를 단백질 음료와 헬스케어 제품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술값과 숙취를 최악의 가성비로 여기며 알코올 대신 단백질 쉐이크를 집어 드는 세대가 시장의 주류로 진입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불황에 따른 '시기 효과'가 아니라, 세대에 각인되는 '코호트 효과'라는 점이다. 폭음을 배우지 않은 세대는 나이가 들고 소득이 늘어도 과거의 음주 패턴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0년 뒤 회식의 주재자가 될 이들이 30대, 40대가 되었을 때의 밤 상권을 지금부터 다시 계산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지금의 리테일과 상권은 이 거대한 구조 변화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술집이 사라진다 : 8년 새 반토막

소비가 줄어들면 공간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주점(간이주점·호프) 수는 2018년 3월 5만 2,302곳에서 2026년 3월 2만 8,178곳으로 46.1% 급감했다. 8년 만에 2만 4천여 곳의 술집이 문을 닫은 셈이다. 간이주점은 50.8% 줄며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호프집 역시 44.0% 줄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약 3천 곳, 10% 가까이 폐업하며 감소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서울로 좁혀보면 상황은 더욱 냉혹하다. 올해 1분기 서울에서 새로 문을 연 호프·간이주점은 272곳(개업률 2.0%)에 불과했던 반면, 문을 닫은 곳은 547곳(폐업률 3.9%)으로 폐업이 개업의 두 배에 달했다. 단 한 분기도 빠짐없이 폐업이 개업을 앞지르며 역성장이 완전히 고착화된 형국이다.
주점의 쇠퇴와 함께 회식 뒤편을 책임지던 '2차 인프라'도 무너지고 있다. 노래방은 2011년 3만 5,300여 곳을 정점으로 15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현재는 2만 7천여 곳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주 52시간제와 워라밸 문화의 정착으로 회식 2차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결과다. 노래방으로 이어지던 2차 동선은 커피전문점으로 대체되었고, 밤 10시 전후에 귀가하는 것이 직장인 회식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1차에서 취하고 2차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밤의 동선 자체가 끊겨버린 것이다. 결국 호프집 몇 곳이 문을 닫는 수준을 넘어, 호프집을 중심으로 굴러가던 도시의 야간 생태계 자체가 통째로 축소되고 있다.
런던의 펍, 도쿄의 이자카야 : 멈추지 않는 글로벌 동시 퇴출
이러한 밤 상권의 붕괴와 재편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각국을 대표하던 전통 음주 문화의 본산지에서도 정확히 같은 속도와 궤적으로 대형 유흥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영국 : 펍의 나라에서 펍이 4분의 1 사라지다
펍(Pub)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2000년 6만 800곳에 달하던 펍이 2025년 4만 4,650곳으로 25년 새 4분의 1 이상 문을 닫았다. 최근에는 매주 8곳꼴로 폐업 속도가 더 빨라졌다. 대형 클럽의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영국 나이트타임산업협회(NTIA)에 따르면 이틀에 하나꼴로 클럽이 문을 닫고 있으며, 18~24세 청년층의 39%는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형 클럽 체인이 파산한 자리는 소형 댄스 바나 무알코올 이벤트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금요일 밤의 사교는 펍 대신 러닝 클럽, 파델(Padel) 코트, 커피 레이브로 이동했다. 대형 취기 공간은 줄어들고, 취향 중심의 소형 바와 웰니스 스포츠는 성장을 이어가는 양상이다.

일본 : '노미니케이션'의 종말과 사상 최대 이자카야 도산
일본의 밤을 지탱하던 이자카야 역시 37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도쿄쇼코리서치 집계 기준 올해 상반기 이자카야 도산 건수는 118건으로, 1989년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직장 상사와 술잔을 기울이던 '노미니케이션(술+커뮤니케이션)' 회식 문화가 해체되고, 20대 정기 음주자 비율이 20년 새 20.3%에서 7.8%로 급락한 결과다. 오죽하면 일본 국세청이 젊은 층의 주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아이디어 공모전(Sake Viva!)까지 열었을 정도다.
대형 유흥 공간의 소형화, 회식 문화의 붕괴, 그리고 음주를 대체하는 웰니스와 취향 소비의 부상. 런던과 도쿄에서 확인되는 이 구조적 데이터는 서울의 변화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전 세계 상권의 기본 단위가 '물량과 취기'에서 '시간과 경험'으로 영구히 이동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죽지 않는 술 소비가 있다
모든 밤 상권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술을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180도 바꿨다는 점이다.
우선 마시는 장소의 이동이다. 전체 음주 상황의 절반 가까이가 일반 식당이나 주점이 아닌 자택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주류를 구매하는 가장 주요한 통로는 편의점(54.6%)이다. 동네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와인·위스키 매대가 몇 년 새 눈에 띄게 확장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밤 상권에서 빠져나간 알코올 소비의 상당 부분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리테일 소매 채널로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거리에는 어떤 술 소비가 남았을까. 집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 즉 '공간과 경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소비다. 대형 호프가 무너지는 동안 정반대 성격의 업태들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책과 위스키를 결합한 북바, 혼자 찾아가 싱글몰트나 전통 잔술을 음미하는 소규모 바, 크래프트 맥주와 내추럴 와인을 시음하며 해설을 듣는 테이스팅룸은 예약제로 운영될 만큼 성황이다. 지속가능성(Zero-Waste)을 표방하는 청담 '제스트'나 전통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촌 '바 참'처럼 뚜렷한 세계관을 지닌 바들은 아시아 50 베스트 바(Asia's 50 Best Bars)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여행객까지 불러 모은다. 취기가 아닌 큐레이션과 스토리를 파는 공간들이다.

운영 방식의 진화도 뚜렷하다. 하나의 공간을 낮에는 카페나 브런치 식당으로, 밤에는 바로 전환하는 하이브리드 업장이 도심 골목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을지로가 대표적이다. 과거 을지로의 밤이 노가리와 생맥주 중심의 빠른 회전율 상권이었다면, 지금 낡은 인쇄소 골목 안쪽을 채우고 있는 것은 낮에는 스페셜티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위스키와 시그니처 칵테일을 건네는 소형 바들이다. 전국 주점이 반토막 나는 동안 이 소용량·고단가·고감도 공간들은 대형 호프가 빠져나간 골목의 권리금을 감도 높은 식당들과 함께 1억에서 3억 원대 수준으로 탄탄하게 지탱하고 있다.
서울시가 청담·한남·성수·을지로·서촌의 독창적인 바 문화를 도시의 밤을 대표하는 핵심 관광 콘텐츠로 규정하고 미식 관광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정확히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덜 마시는 대신 더 가치 있게 쓰는, 질적 소비로의 대전환이다.
상권 메커니즘의 전환 : '물량'에서 '시간'으로
쇠퇴 모델: 소비량(물량) × 빠른 회전율 (대형 평수, 획일적 안주, 취기 중심)
생존 모델: 객단가(프리미엄) × 체류 시간 (소형 평수, 독점적 콘텐츠, 감도 중심)
밤 상권을 규정하는 공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취하기 위해 500cc 잔을 연거푸 비우지 않는다. 대신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넘기며 위스키를 곁들이는 북바를 찾고, 바텐더의 철학이 담긴 시그니처 칵테일 한 잔에 3만 원을 기꺼이 지불한다. 밤 상권의 기본 단위가 '단체와 유흥'에서 '개인과 취향'으로 잘게 쪼개진 것이다.

이 변화에 속도를 붙인 것은 SNS다. 실제로 주류 소비자의 60% 이상, 특히 20대 여성의 77.7%가 SNS를 통해 술에 대한 정보를 얻고 방문을 결정한다. 인스타그램 저장 목록만 봐도 흐름은 명확하다. 그곳에 획일적인 대형 호프집은 없다. 어디서 무엇을 마시는지가 곧 개인의 취향과 감도를 드러내는 기준이 되면서, 술자리는 단순한 음주를 넘어 '기록할 만한 콘텐츠'가 되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담길 매력이 없는 공간은 애초에 후보군에서 제외되고, 공간의 무드와 조명, 잔 하나까지 정교하게 기획된 바는 방문하기 전부터 피드 위에서 먼저 소비된다.
술을 마시는 목적이 취기 하나에서 취향과 기록, 경험이 얽힌 복합 소비로 바뀌었다. 시간을 파는 공간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호프가 나간 자리, 무엇이 들어왔나
그렇다면 8년 새 문을 닫은 2만 4천여 곳의 술집 자리는 어떻게 됐을까. 결코 공실로만 남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채운 업종들을 들여다보면 밤 상권의 다음 형태가 더욱 선명해진다.
첫 번째 새 주인은 가챠숍과 피규어 매장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장난감가게는 1년 새 20% 이상 급증하며 매일 2곳꼴로 새로 생겨났다. 홍대 일대 마포구만 보더라도 장난감 매장이 40% 이상 폭증하는 동안 호프와 간이주점은 10%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동네 호프집 자리에 뽑기 기계가 들어서고, 2030 사이에서 '회식 2차 대신 가챠숍'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취하는 데 수만 원을 쓰는 대신, 몇천 원짜리 캡슐 하나로 가볍게 취향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카페다. 주점이 반토막 나는 사이 커피음료점은 5만 2천 곳에서 9만 3천 곳으로 80% 폭발적으로 늘었다. 회식 2차가 노래방에서 커피전문점으로 옮겨가고 밤 10시 전후에 헤어지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밤의 2차 슬롯을 술 대신 커피가 완전히 가져갔다.

세 번째는 소형 바(Bar).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위스키와 시그니처 칵테일을 파는 하이브리드 공간들이 감도 높은 식당들과 함께 을지로 골목을 채우며 1억에서 3억 원대의 권리금을 지탱하고 있다. 저녁 6시간만 여는 매장과 하루 12시간 이상 돌아가는 매장의 임대료 지탱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골목 상권의 생존 공식이다.

새롭게 들어선 업종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취기 없이 저녁 시간을 판다는 것'이다.
회전율과 취기가 지배하던 자리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잔에 3만 원을 지불하는 프리미엄 체류(바)와, 몇천 원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사는 스몰 럭셔리(가챠숍·카페). 가격대는 양극단이지만 본질은 같다. 취하기 위한 소비가 사라진 자리를 각자의 취향을 채우는 소비가 대신하고 있다.
결국 다음 밤 상권의 원형은 유흥가가 아니라 '취향가'다. 서촌과 을지로처럼 취하지 않는 밤이 성립하는 골목들은 이미 글로벌 수요까지 끌어들이며 도시의 새로운 앵커가 되었다.
술이 줄어드는 시대에 밤 상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밤 상권의 단위가 회전에서 체류로, 물량에서 취향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취하지 않는 밤을 찾아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술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가 진짜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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