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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시장 리테일화: 올리브영 올영양행·스타벅스·마뗑킴·코닥이 들어선 광장시장은 먹거리로 사람을 모으고, 지갑은 소매·의료·이불에서 열린다(소매 +20%, 의료 +80%).
매장마다 다른 외국인 비중: 새 K-패션·K-뷰티는 외국인 매출 80~95%, 광장시장 이불(대만 관광객)·약국은 내국인이 절반 이상.
광장 → 남대문 → 동대문: 남대문 아동복 도매가 소매로 열리고, 현대아울렛 동대문은 식품관을 ‘골목시장’으로(외국인 매출 +122%). 전통시장이 리테일의 새 포맷이 됐다.
2025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약 1,894만 명. 역대 최다였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00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의 발길은 백화점과 하이스트리트를 지나 전통시장 골목까지 닿았다. 명품 매장 대신 시장 노점과 이불줄을 서는 이유는 하나다. ‘진짜 한국’을 사고 싶다는 것. 그 수요를 가장 크게 받아낸 곳이 전통시장이다. CBRE 코리아 리테일이 광장시장과 남대문 두 권역의 카드 결제 데이터를 들여다본 결과, 두 시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이유로 변하고 있었다.
광장시장: 먹으러 와서, 사서 나가는 곳
광장시장은 1905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서울 도심 종로, 청계천과 동대문 사이에 자리한다. 주단과 포목을 팔던 원단 시장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빈대떡과 육회로 대표되는 길거리 음식과 빈티지 의류로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서울의 대표 명소가 됐다.
평일 오후의 광장시장은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린다. 노점 메뉴판에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가 함께 적혀 있고, 빈대떡 앞에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구글에서 'Gwangjang Market' 검색량은 몇 해 전만 해도 미미했지만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서울을 찾은 외국인 대상 조사에서 광장시장 방문율은 34.9%로 인사동·삼청동과 남대문시장을 앞질렀다. 찾아오는 세대도 달라졌다. 지난해 4분기 서울 전통시장 방문객 중 20대 이하 비중이 60대 이상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중장년의 시장이라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평일 오후에도 광장시장 통로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다. 노점 앞 줄의 상당수가 외국인
그런데 돈의 흐름은 인상과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최근 1년간 광장시장 권역의 음식 매출은 483억 원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소폭 줄었다. 늘어난 건 다른 쪽이다. 소매 매출은 350억 원으로 1년 새 20% 넘게 늘었고, 의료는 322억 원으로 80% 넘게 뛰었다. 이 흐름은 갈수록 가팔라져서, 올해 5월 한 달만 떼어 보면 소매와 의료가 나란히 두 자릿수 억 원대로 늘어나는 동안 음식은 되레 줄었다. 먹거리로 사람을 모으지만, 정작 지갑은 먹는 것 바깥에서 더 열린다. 다국어로 적힌 김밥·순대 메뉴 옆으로, 젤라토 같은 새 먹거리가 나란히 들어섰다.
늘어난 소매의 안쪽을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이불이다. 광장시장은 원래 주단과 포목으로 시작한 시장이고, 혼수 이불을 하러 광장에 가는 것은 내국인들에게 오래된 소비였다. 그 위에 외국인 소비가 얹혔다. SNS를 타고 한국 침구의 품질과 가격이 SNS로 퍼지면서, 이불 골목은 특히 대만 관광객 사이에서 이름이 났다. CBRE 코리아 리테일의 데이터에서도 광장시장 권역 내 침구 매장의 건당 결제액은 23만 원을 넘는다. 한 세기 동안 시장을 지켜온 품목이 새로운 손님을 만나 다시 팔리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는 건 이불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이 팽팽하다는 점이다. 권역 내 한 침구 매장은 2026년 5월 매출에서 외국인 결제가 내국인을 근소하게 앞섰고, 인근 다른 매장들에서는 박빙 속에 내국인이 조금씩 앞선다. 패션·뷰티가 매출의 90%대를 외국인에 기대는 것과 달리, 이불은 내국인이 여전히 절반가량을 받치고 그 위에서 외국인이 성장을 끌어올린다.

시장 서문 일대에 코닥·마뗑킴·세터·마리떼 프랑소와 저버가 한 곳에 모여있다.
다른 하나는 패션과 뷰티. 지난해부터 오프뷰티, 코닥, 마뗑킴, 세터,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같은 브랜드가 서문 일대에 잇따라 자리 잡으며 시장 안에 패션 클러스터가 만들어졌고, K-뷰티 편집숍과 스타벅스, 아이웨어 브랜드까지 뒤를 이었다. 내국인 눈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인데, 성적이 만만치 않다. CBRE 코리아 리테일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닥과 세터하우스 광장마켓점은 2026년 5월 기준 매출의 약 95%가 외국인 고객에게서 나왔다.



원단 상가 2층에 문을 연 올리브영 ‘올영양행’. 개화기풍 뷰티 콘셉트와 한복·원단 체험 공간을 함께 들였다.
변화의 정점은 올해 4월 원단 상가 2층에 들어선 올리브영이다. 244평 규모 매장에 '올영양행'이라는 간판을 달고, 개화기 한복 포토존과 전통 원단을 이용한 퍼스널 컬러 진단 코너까지 들였다. 데이터로 보면 올영양행은 5월, 매출의 80%가 넘는 몫이 외국인에게서 나왔고, 그 규모도 올리브영 도심 주요 매장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다이소도 광장시장 입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매장 단위로 뜯어보면 외국인 의존도가 업종과 매장마다 극명하게 갈린다. 새로 들어온 패션·뷰티 브랜드가 2026년 5월 기준 매출의 80~95%를 외국인에게서 올리는 반면, 이불은 내국인과 외국인이 박빙이고, 약국과 F&B는 해외에서 바이럴을 탄 일부 매장을 빼면 여전히 내국인 매출이 조금 더 많다. 같은 종로 권역의 약국만 봐도 외국인 비중이 40%를 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열에 아홉이 내국인인 곳도 많다는 얘기. 비슷한 시기 문을 연 짱 오락실은 매출의 약 88%를 내국인이 채운다. 광장시장의 리테일화는 시장 전체가 외국인으로 넘어가는 단순한 그림이 그림이 아니다. 매장마다 외국인과 내수의 무게가 다른, 스펙트럼에 가깝다.


원단상가 자리를 채운 패션 브랜드들. 내국인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겐 ‘시장 속 브랜드’라는 경험이 팔린다.
이런 흐름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장의 결을 알아본 개별 브랜드들이 하나씩 들어와 있었고, 그 위에 코로나가 끝나고 유입되는 외국인이라는 새 변수가 얹히면서 지금의 속도가 만들어졌다. 브랜드들이 광장시장에서 사는 것은 매대가 아니라 맥락이고 헤리티지이다. 그 사이 시장의 임대료 호가는 크게 뛰었고, 들어오려는 브랜드의 대기 줄이 생겼다. 계약 조건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도 나온다.

먹거리존과 함께 올리브영·짱오락실·카페를 가리키는 안내판. 시장의 업종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는 모습이다.
남대문: 손님이 바뀌었을 뿐, 파는 것은 그대로

평일 오전 남대문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젊은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남대문시장은 서울 중구, 조선의 정문이던 숭례문(남대문) 바로 옆에 자리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이다. 명동과 서울역을 지척에 두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의류·아동복·안경·주방용품·수입잡화의 도매 거점으로 이름을 떨쳐 왔다. 남대문의 변화는 광장시장과 결이 조금 다르다. 가장 뚜렷한 숫자는 외국인 소비의 증가세다. CBRE 코리아 리테일의 분석 기준, 지난해 5월 대비 권역 외국인 매출이 올해 5월 60%나 뛰었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건 서양권 방문객의 존재감이다. 오래된 골목과 노포, 반세기 된 상가 건물이 만드는 풍경이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된다. 데이터에서도 미국이 외국인 매출 1위에 올라 있고 호주와 캐나다가 상위권에 있는데, 인근 호텔의 숙박 결제가 섞인 수치임을 감안해도 일본·대만이 이끄는 광장시장과는 확연히 다른 구성이다. 소비의 결도 다르다. 브랜드 매장에서 크게 쓰기보다, 골목을 돌며 오래된 것을 소소하게 담아가는 쪽에 가깝다.

잡화 도매상가(왼쪽)와 아동복 골목(오른쪽). 도매의 거리가 소매의 무대로 바뀌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남대문 리테일의 기둥은 여전히 오래된 실용 업종이다. 약국이 이끄는 권역 의료 매출은 1년 새 20% 가까이 늘었고, 권역 매출 상위 목록에는 약국이 열 곳 가까이 올라 있다. 안경도 그렇다. 하루 만에 안경을 맞출 수 있는 남대문 안경 골목은 외국인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진 코스인데, 골목 안경점들의 건당 결제액은 15만 원에서 많게는 80만 원대에 이른다. 침구 매장의 건당 결제액도 49만 원을 넘는다. 광장시장에서 확인되는 이불 소비가 남대문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셈이다.
이 기둥을 떠받치는 건 남대문 특유의 리듬이다. 광장시장이든 남대문이든 가장 붐비는 날은 토요일이고, 일요일이면 나란히 한산해진다. 다만 남대문은 평일 매출이 휴일 못지않게 단단하다. 새벽 도매와 평일 상인 거래라는 오래된 기초 체력이 여전히 살아 있고, 주말·관광 소비는 그 위에 얹히는 한 층일 뿐이다.

광장시장보다는 다양한 연령층의 내국인들로 붐비고 있는 남대문 시장 골목.
그 단단한 바탕 위로, 전혀 다른 성격의 손님이 들어오고 있다. 남대문 아동복 상가가 그렇다. 전국 소매상이 물건을 떼가던 도매 거리가, 이제 개인이 직접 한두 벌씩 골라 사는 소매의 무대로 열리는 중이다. 실제로 상가 상인 네 곳에 물어보니 하나같이 요즘은 개인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도매가 여전히 기본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아침부터 점심까지 몰려와 직접 사 간다는 것이다. 가장 붐비는 그 시간대가 지나 오후 세 시쯤이면 골목은 다시 한산해진다. 개인 손님의 또 다른 축은 2030 젊은 부모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백화점 명품 대신 남대문 골목에서 원단과 디자인, 가격을 직접 저울질하는 ‘실속형 디깅(digging) 소비’가 MZ 부모 사이에 번지고 있다.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 취향만은 놓지 않는 요즘 소비와 맞닿는다. 숫자도 같은 방향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유아동복 시장은 2019년 1조 9146억 원에서 지난해 2조 6295억 원으로 몸집을 불렸지만, 명품 유아동복은 2023년 3974억 원에서 이듬해 3947억 원으로 성장이 멈춰 섰다. 명품 매장을 나온 발길이 남대문 골목으로 흘러들고 있다.

백화점 명품 대신 이곳에서 원단과 디자인을 직접 고르는 2030 부모가 남대문 아동복 상가의 새 손님으로 들어왔다.
시장다움이라는 자산

광장시장의 먹자골목. 평일 오전에도 관광객들로 붐빈다.
다만 이 변화가 시장에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광장시장은 관광객에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지역 주민에게 식재료와 생필품을 대던 본연의 기능이 약해졌다. 반찬가게와 채소, 고기 점포가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평일에는 한국인 손님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상인들 사이에서 나온다. 역설은 관광객 쪽에서도 나타난다. 외국인에 맞춰 정비된 시장에서 오히려 한국다움을 느끼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광장시장에 들어선 스타벅스. 시장의 풍경을 벽화로 옮겼다.
그래서 눈여겨볼 것은 새로 들어온 브랜드들의 태도다. 어떤 브랜드는 입점하면서 주변 상인들과 함께 유니폼을 맞춰 입거나 인근 매장과 협업 메뉴를 냈고, 어떤 브랜드는 시장 먹거리와 겹치는 품목을 일부러 취급하지 않는다. 시장의 분위기를 소비만 하는 게 아니라 시장과 섞이려는 시도다. 전통시장 리테일화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여기에 달려 있다. 브랜드가 빌려 쓰는 것이 시장의 공간이 아니라 시장다움이라면, 그 시장다움을 지키는 일이 곧 매출을 지키는 일이 된다.
그래서 전통시장은 어떻게 다시 리테일이 되는가?
답은 시장이 새로 무엇을 들여놓느냐가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것에 값이 매겨지는 데 있다. 백 년을 쌓은 골목의 시간, 노포의 손때, 흥정이 오가는 소란, 어디서도 복제할 수 없는 이 '쌓여온 세월'이 상품이 되는 순간, 시장은 새로운 리테일이 된다.
광장과 남대문은 그 감각을 파는 두 사례이다. 광장시장에서는 브랜드가 매대가 아니라 시대가 쌓아온 헤리티지를 산다. 명동에도 성수에도 매장은 낼 수 있지만, 백 년 된 시장 골목에서 브랜드를 만나는 경험은 여기서만 팔리기 때문이다. 남대문에서는 반대로, 오래된 업종이 그 감각 덕에 새 손님을 얻는다. 안경과 약, 이불과 아동복이라는 낡은 상품이 진짜 옛날 정취의 서울을 찾아온 외국인과 실속을 발굴하러 온 젊은 부모를 나란히 맞는다. 겉으로는 브랜드 유입과 고객 확장으로 갈리지만, 두 시장이 파는 밑천은 결국 하나다.

새로 들어온 브랜드(올리브영)와 갈릭보이 같은 먹거리 노점이 나란히 선 광장시장의 지금.
그리고 이 변화는 한 시장의 얘기로 끝나지 않는다. 광장이 브랜드를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남대문이 트래픽부터 돌며 다음 순번을 준비하는 사이, 바로 옆 동대문에서는 제도권 리테일이 아예 시장을 하나의 포맷으로 복제하기 시작했다.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은 개점 10년 만의 첫 리뉴얼로 60여 개 브랜드를 새로 들이는데, 그 중심이 지하 2층 식품관이다. 4,595㎡, 한 층 전체를 한국 전통시장을 본뜬 ‘골목시장’ 콘셉트로 꾸민다. 이런 시도는 외국인 유입을 타겟팅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의 올해 1~5월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122% 뛰었고, 외국인 매출 비중은 23.7%에 이르렀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 기준 을지로동의 4월 외국인 방문객도 31만 8,304명으로 1년 새 16.8% 늘었다(헤럴드경제·머니투데이·이투데이, 2026.7.2). 전통시장이 리테일의 무대가 되는 것을 넘어, 리테일이 베껴 쓰는 하나의 포맷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 밑천이 닳을 수 있다는 것. 관광객에 맞춰 시장을 정비할수록, 정작 그들이 사러 온 세월의 냄새는 옅어진다. 그래서 전통시장 리테일화의 성패는 임대료나 매출이 아니라, 시장다움을 파는 동시에 그것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렸다. 새 브랜드가 시장 먹거리와 겹치는 품목을 비우고 공간을 최소한만 손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광장과 남대문, 동대문이 나란히 보여주는 건, 전통시장이 하이스트리트와는 또 다른 하이브리드 리테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가장 오래된 것을 팔면서도, 그 오래됨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그 답에서 전통시장 리테일의 끝은 쇠퇴가 아니라 진화로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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